본문 바로가기
BOOK REPORT/인문, 인문교양, 심리학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책 리뷰

by 라뽀비 2023. 3. 31.
728x90
반응형

 

 TV 프로그램 중에 알쓸신잡을 매우 재미있게 봤는데 출연자 중에 건축가 유현준 님의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워낙 공간에 대해 관심이 있고 곳곳에 멋진 건축물들을 찾아보기도 하는 편이라서 해주는 이야기들이 너무 흥미롭게 다가왔다. 홍익대학교에서 몇백 명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 수업은 재밌고 유익하기로 유명하다던데 말씀을 너무 잘하신다. 책에 머리말에는 편하게, 지루하지 않게 이 책을 읽기 바란다고 했는데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본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은 작은 골목부터 더 나아가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이르기까지 도시 속에 담겨있는 정치와 경제, 문화와 역사, 공간에 대한 과학적인 해석까지 폭넓은 시각으로 도시의 변화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책이다.

 

 '강남 거리는 왜 걷기 싫을까?', '명동엔 왜 걷는 사람이 많을까?', '왜 어떤 거리는 걷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고 '현대 도시들은 왜 아름답지 않은지',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 '강북의 도로는 왜 구불구불한가?' 등등 너무 재미있는 주제들로 구성되어서 자주 꺼내보곤 한다. 이런 소재들에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들이 더해져 쉬운 문체로 자세하게 이야기를 전해주니 보는 내내 , 그렇구나’, ‘재밌다. 이 이야기...’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나는 4장에서 다룬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뉴욕 이야기"를 리뷰해보고자 한다.

 

 4장은 로프트와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저자는 살아 움직이는 도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뉴욕의 로프트(Loft)라고 한다. 로프트의 사전적 의미는 예전의 공장 등을 개조한 아파트인데 이 정의가 생겨난 과정을 통해 움직이는 도시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초기 산업 시대의 뉴욕은 미국 최대의 항구도시였다. 때문에 항구에 근접해 있던 소호지역에 고밀도의 공장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때 지어진 공장형 건물들은 방적기계 같은 큰 기계들이 설치되어야 했기 때문에 기둥 간격도 넓고 천장이 높았고 물건을 옮길 대형 화물용 엘리베이터가 있는 구조였다. 천장을 높게 지은 건물들의 창문 크기는 클 수밖에 없었고, 큰 창문으로 인해 햇볕이 잘 들고 통풍도 잘 되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러다 2차 산업이 쇠퇴하면서 공장들이 들어찼던 공간들이 비워지게 되었다. 빈 건물들 때문에 치안이 나빠지는 문제가 발생되었다. 이에 뉴욕시는 이 공간을 헐값에 예술가들에게 임대를 하기 시작했다. 이 공간은 예술가들에게는 커다란 캔버스에 작업을 할 때 유리한 이점이 많았다. 그림은 보관하기도 옮기기에도 수월하고 임대료는 저렴하기까지 하니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이 모이게 되니 자연스럽게 그 주변은 갤러리들이 들어서게 되고, 예술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돈이 많은 사람들이 갤러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주 소호지역을 방문하게 된 자본가들은 예술가들이 로프트에서 사는 모습이 멋져 보였고 이 공간으로 이사를 오기 시작했다. 자본가들이 모이니 명품샵들이 들어서게 되었고 점차 관광객들도 몰렸다. 이런 이유로 임대료가 오르게 되니 결국 예술가들은 임대료가 더 저렴한 공간을 찾아 떠나게 된다. 

 

 뉴욕의 소호 지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면 도시는 단순하게 건축물이나 여러 공간들을 모아놓은 곳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도시는 계속 변화한다. 또 다른 사례로 뉴욕의 할렘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뉴욕의 할렘가는 20세기 초반에는 돈 많은 유태인들이 사는 좋은 동네였다. 후에 흑인들이 그 주변으로 이주해 오기 시작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유태인들은 강 건너 뉴저지에 마당이 있는 교외 지역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마침, 마당 있는 교외 지역에 사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어쨌든 유태인들이 떠나면서 조금씩 방치되는 빈 집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깨진 유리창들이 그대로 방치되는 등 환경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뉴욕시는 대책으로 버려진 건물들을 개발업자들에게 한 채당 1달러에 100년을 임대해 주었다. 도시의 환경 개선을 위해 개발업자들은 거리 전체를 한 번에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고 도시의 개발지역은 점점 브라운스톤 건물로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개발업자들은 회복된 건물들을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특혜 분양을 해주었다. 건물에는 반스앤드노블 책방과 스타벅스를 입점하게 했다. 전반적으로 지역의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 이렇게 빈민가들을 천천히 재정비하고 있다.  

 

 도시는 태어나 성장하고 전성기를 지나 쇠퇴하고 마지막으로 죽는다. 죽은 곳에 새로운 생명이 돋아나도록 유도하는 것이 도시를 재생시키는 건축가의 역할이다. 소호와 할렘 지역이 도시 재생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기존에 있던 시설을 잘 살려서 좋은 공간으로 재생시킨 사례가 있다. 바로 하이라인 공원이다. 하이라인 공원은 고가도로처럼 공중에 위치해 있는 공원인데, 이 공간은 원래 항만에서 들여오는 재료와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운송하기 위한 철도였다. 이 철도는 건물의 2층 옆으로 지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빌딩 안을 관통하기도 하는 구조였는데 과거에는 빌딩과 항만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기반이었지만 소호의 공장들이 버려질 무렵에 이 철도 역시 쓸모를 다했다. 잡초가 무성한 채로 수십 년간 방치되었다.

 

 쓸모가 없어진 철도를 처음에는 없애려고 하다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이 공간을 보존하자는 운동이 시작되었고 몇 번의 공모전을 거친 후에야 현재의 공원이 만들어졌다. 이 하이라인이 특별한 이유는 도시가 고밀화, 고층화되면 지면은 점점 건물에 묻히게 되는데 이 공간은 2층 높이에 위치해 있어서 시야에서 자동차도 안 보이고 하늘은 더 가깝게 보이고 건물의 그림자로부터 조금은 자유롭게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탄생했다는 점이다.

 

 

 나는 뉴욕에 갔을 때 이곳을 일정에 넣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었으나 버려진 공간을 어떻게 뉴욕에 사는 사람들이 애정하는 장소로 바꿨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2층 높이에 있던 철길을 따라 사이사이에 자리한 건물들 보는 재미도 있었고 고개를 돌리면 바다도 보였다. 자동차의 소음도 적게 들리고 길 사이사이 식물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좋았다. 시냇물이 흐르는 것처럼 물이 흐르는 공간도 작지만 있었다. 쉬어갈 수 있는 의자들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편안해 보였다. 나도 햇빛이 잘 드는 의자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서인지 이런 고밀도 도심 공간에서 특별한 공간이 주는 느낌이 좋았다. 우리도 서울역에 고가공원이 생기긴 했는데 결이 좀 달라서 아쉽다. 좀 더 머물 수 있는 공간이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뉴욕은 격자형 도시이다. 보통 이런 단순하고 지루한 공간의 도시들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뉴욕은 성공적인 도시 공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격자형의 단조로움을 깨기 위해 대각선의 브로드웨이를 만들었고 타임스퀘어를 만들었다. 랜드마크도 많다. 게다가 모든 블록이 정사각형은 아니다. 뉴욕은 에버뉴를 따라 걸을 때와 스트리트를 따라 걸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 뉴욕의 블록크기는 가로 250m, 세로 60m이다. 시속 4km로 걷는다면, 스트리트 한 블록이 3 45초, 에버뉴는 한 블록이 1분 소요된다. 확실히 에버뉴는 남북으로 햇볕이 잘 들고 1분마다 새로운 거리가 나타난다. 그래서 피프스 에버뉴나 파크 에버뉴 같은 유명한 에버뉴를 갖게 되는 것이다. 

 

 도시는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변화되어 왔다. 평소에 무심하게 지나치는 도시에서 변화된, 또는 앞으로 변화될 공간이 주는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그래서 이 책이 재미있다. 예쁘게 스케치된 장소가 책 곳곳에서 보이고 랜드마크의 사진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도시와 공간,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출처: 유현준(2015),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을유문화사.

 
728x90
반응형

댓글